"교실이 된 다랑논·텃밭, 폐교하면 끝"… 교육 현장이 증언한 '작은 학교'의 기적
[국회토론회 토론 심화] 교사·학부모·연구자·노조 4인 4색 집중 토론
학생 자치·생태 감수성 탁월… 해외선 '폐교반대추정' 도입해 학교 지킨다
국회토론회 후반부 지정 토론에서는 현장 교사와 마을공동체 대표, 교육 정책 연구자들이 소규모 학교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실천 사례와 해외 정책을 쏟아내며 정부의 일방적인 통폐합 정책을 다각도로 압박했다. 토론자들은 "작은 학교는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라 공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고 기후·AI 시대 미래 교육을 선도할 가장 완벽한 배움터"라고 입을 모았다.
◇ 이상근 교사 "학생 준다고 업무 안 줄어… 교원 산정 방식 뜯어고쳐야"
충북 청천초등학교 교사이자 전교조 괴산증평지회장인 이상근 교사는 작은 학교 현장에서 구현되고 있는 독창적인 교육 모델을 공개했다.
청천초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참여하는 무학년제 '학생 다모임'을 통해 행사 기획과 예산 반영, 평가까지 직접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학교자율시간'을 확보해 1~2학년 마을 사람 인터뷰, 3학년 '구룡천 생물 도감' 만들기, 6학년 마을 활동가 취재 '사람책' 제작 등 체계적인 마을 교과를 정규 교육과정으로 운영 중이다.
봄철 볍씨 심기부터 가을 벼 베기까지 이어지는 '논마실·밭마실' 생태 수업과 초·중등 연계 축제인 '단오제'는 마을 농부와 학부모가 교사가 되는 대표적 공동체 프로그램이다.
이 교사는 "소규모 학교는 관계의 밀도가 높아 한 아이도 소외되지 않는 맞춤형 수업이 가능하다"면서도 "하지만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교원 배치를 줄이다 보니, 시내 학교 40명이 나눌 행정업무를 7명이 도맡아 교사들이 탈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 수 기준의 획일적 교원 배치를 즉각 철폐하고, 최소 운영 인력 보장제와 지역교사제 도입 등 질적 지원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 이민희 대표 "비용 전가를 절감으로 착각… 작은학교는 '사회적 투자'이자 '국가최소기준'"
이민희 깨움마을학교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교육당국의 효율성 만능주의를 통렬히 비판하며, 작은학교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했다.
이 대표는 먼저 "지역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정책이 사전에 충분한 시민적 숙의 과정 없이 발표되어 지역사회에 큰 파장과 혼란을 초래했다"며 '절차적 정의'와 '의사소통적 정당성'의 부재를 지적했다.
이어 "교육당국은 여전히 작은학교를 효율성과 비용이라는 관성적 경제 논리로 바라보고 있다"며 "'효율성' 중심 행정의 가장 큰 오류는 '비용 전가'를 '비용 절감'으로 착각하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당장 학교 문을 닫아 예산 몇 푼을 아낄지 모르지만, 그 결과 지역이 공동화되고 돌봄과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주거·의료·복지 비용은 훗날 다음 세대에게 훨씬 더 거대한 청구서로 돌아온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도로나 철도 같은 SOC 투자는 정당화하면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지탱하는 필수 인프라인 작은학교 예산은 왜 소모성 지출로 보느냐"며 "작은학교 투자는 지역 소멸을 막고 국가 균형발전과 연대를 지켜내는 고부가가치 사회적 투자"라고 역설했다.
그는 학교를 '지식 전달 기관'에서 '지역교육생태계를 조직하는 핵심 공공거점(플랫폼)'으로 재정의할 것을 주문하며, 작은학교 정책 재설계를 위한 '4대 층위의 원칙'을 제시했다.
무엇을 보장할 것인가: 지역 차별 없는 교육·문화·돌봄 기본권 보장(형평성)
누가 결정할 것인가: 읍·면 생활권 주민이 정책의 공동 기획자·생산자가 되는 주민 주도성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학교-마을 연계 및 읍·면 생활권 중심의 통합 운영
무엇을 기준으로 지속할 것인가: 학생 수 감소가 아닌 사회적 가치와 지속가능성 기준 평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해법으로는 ▲주민·학부모에게 승인권 등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는 '한국형 지역사회학교(커뮤니티스쿨)' 시범사업 추진 ▲교육부·행안부·농림부·복지부 등으로 쪼개진 '따로국밥'식 행정을 읍·면 생활권 중심으로 묶는 '범정부 융복합 정책 체계 구축' ▲지역공동체 재생산 허브 역할을 할 '읍·면·동 평생학습센터' 설치 법적 의무화 이행 강제 등 3대 과제를 제안했다.
이 대표는 "작은학교에 다닐 권리, 안전하게 돌봄과 문화, 의료를 누릴 권리는 지역 역량에 따라 차등 공급되는 상품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국가최소기준'"이라며, "작은학교 정책은 교육정책이자 생활생태계를 살리는 지역정책이며 미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국가 발전 정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 김성원 소장 "폐교 후 10년간 인구 급감… '폐교반대추정' 원칙 세워야"
김성원 Play AT 연구소장은 2011년 관내 19개 학교 중 8개교를 한꺼번에 폐교했던 덴마크 남부 튄더(Tønder)시의 실증 연구를 소개했다. 남덴마크대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폐교 후 6년 차부터 인구 유출과 주택가격 하락이 본격화되어, 10년간 인구 변화율이 미폐교 지역보다 7.6%p 더 악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소장은 영국의 '하드 페더레이션', 스페인의 소규모 농촌학교 연합체 'CRA', 프랑스의 학년 분담형 'RPI' 등 학교 건물을 유지하면서 조직을 묶는 선진국 모델을 소개하며 스코틀랜드의 제도를 벤치마킹할 것을 제안했다.
스코틀랜드는 2010년 법 개정을 통해 '폐교반대추정(Presumption against closure)' 제도를 도입했다. 교육당국이 농촌학교를 폐교하려면 먼저 학교를 유지하거나 연계할 수 있는 모든 합리적 대안을 검토했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며, 학생 통학거리와 지역사회 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으면 폐교 상담 절차조차 시작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김 소장은 "한국도 학생 수 감소 ➔ 통폐합이라는 맹목적 도식을 버리고, 대안 우선 검토와 통학·지역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절차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짚었다.
◇ 이희진 실장 "통폐합 이후 상시 비용 천문학적… 중앙정부의 자치권 침해"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이희진 전교조 경남지부 정책실장은 교육부의 재정 효율화 논리가 가진 구조적 결함을 파헤쳤다.
이 실장은 "폐교 이후 발생하는 통학버스·택시 운영비, 기숙사 관리비, 거점학교 시설 확충 등은 일회성이 아니라 매년 투입되어야 하는 영구적 상시 비용"이라며 "정부는 통폐합으로 아낄 수 있는 재정이 얼마인지, 새로 발생하는 지속 비용과의 차액이 얼마인지 구체적인 데이터조차 내놓지 못한 채 막연한 효율성만 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방교육자치법」상 학교의 설치·이전·폐지는 교육감 고유의 관장사무"라며 중앙 정부가 수백억 원의 특별교부금을 무기로 교육감의 학교 존폐 판단 권한에 개입하고 자율성을 왜곡하는 행위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지방교육자치와 재정분권의 역사적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한다"며 사업 철회를 강력히 촉구했다.

